자기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겠다고 결정한 것과 데레사를 허원명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마더 데레사의 힘과 특징 그리고 목적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인 실마리가 된다. 단순한 수도자가 되는 게 아니라 선교활동을 하겠다는 열정, <밖으로 나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이 열정을 보면 마더 데레사의 첫 번째 부르심에 대해 알 수 있는데 그 선교생활은 복음을 전하겠다는 강한 믿음의 표현이다.
마더 데레사는 처음부터 개척정신이 있었다. 그런데 선교활동은 연민에 찬 활동만은 아니다. 마더 데레사가 리지 외의 성녀 데레사를 수도 명으로 택한 것을 보면 그분의 선교 활동이 관상적인 측면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 리지 외에서 보석상의 막내딸로 태어난 데레사는 1888년 열 다섯 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갈멜 수도회에 들어갔는데, 자신의 소명은 <사랑>이며 가장 큰 의무는 사제와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은 몸이 약해 선교사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단순성, 희생정신, 관용으로 가득한 영성, 즉 복음의 근본 진리로 향하는 건강한 영서의 길을 따랐다. 데레사는 <나의 작은 길은 영적인 어린이 됨의 길, 절대적인 신뢰와 자기 포기의 길이다>라고 했다. 리지 외의 데레사는 자신을 <아기 예수의 손에 있는 공>으로 비유한 반면 마더 데레사는 신뢰와 자기 포기라는 단순한 길을 좀더 실제적으로 표현하여 자신을 <하느님의 손에 있는 연필> 이라고 불렀다.
마더 데레사는 성 마리아 학교에서 지리와 교리를 가르치는 한편, 힌두어와 벵골어를 배웠다. 그리고 1944년에는 교장 직을 맡게 되었다. 그 때는 식량은 아주 적고 할 일은 너무 많았던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잖아도 별로 튼튼하지 못했던 데레사는 결핵에 걸려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지 못하고 히말라야산 기슭의 작은 언덕에 있는 다릴징으로 보내졌다.마더 데레사가 <부르심 안에서의 부르심>이라고 하는 두 번째 부르심을 받은 것은 1946년 9월 10일 기차 안에서였다.
"그것은 하느님과 나, 하느님의 은총과 나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진보를 이루는 첫 번째 단계는 그것을 원하는 것이다."
마더 데레사에게 거룩함이나 성스러움에 대해 질문을 하면 "거룩함은 필수품입니다. 그것은 수도자 등 소수에게 맡겨진 사치품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의무입니다. 거룩함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의무입니다. 거룩함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라고 일상적으로 설명했다.
마더 데레사를 "살아있는 성녀"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현대에서 점점 더 높이 평가받고 있는 개념, 즉 균형과 관계있는 것 같다. 인도의 스승 크리슈나무르티는 거룩함이 <온전성>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석했는데, 그것은 우리의 모든 갈라진 지체들이 하나의 인간으로 고르게 결합된다는 의미이다.
마더 데레사의 영적인 길은 관상생활이 사랑의 활동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그것은 단순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단순성 뒤에는 탁월한 신앙과, 의지와 지혜에서 나오는 여러 해 동안의 체험과 봉헌이 숨어 있다. 마더 데레사는 현실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을 조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존경스러우면서도 친밀감 있고, 실용적이면서도 통찰력 있고, 상처 입기 쉬우면서도 강하고, 현실적이면서도 관상적일 수도 있다. 출처 : 사랑의 선교 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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